집은 디자인이 아니다. #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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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후즈 작성일18-04-18 15:34 조회53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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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 채의 집을 지은 낭만주의 건축가 김기석이 풀어 낸 집이야기

'집은 디자인이 아니다'

글 김기석 / 삽화 구승민? (자료제공: dibook) 

 

 

“집을 ‘읽고’, 집을 ‘쓰다’”

그 책을 홀린 듯이 다 읽은 후 불현듯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몇 년이 지나 나는 책의 저자와 마주 앉아 내가 살 집에 대해 ‘읽고 다시 읽고’, 마침내 그에게 ‘쓰는’ 일을 부탁했다. 

온전히 책이 만들어 낸 인연이었다. 

-양귀자/소설가

 

집은              다.

   

CHAPTER 02 집은, 인류의 문명사다

 

부엌은 집의 심장이다.

집의 출발은 부엌이었다.

주택에서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하는 곳은 부엌이다. 부엌은 주택의 심장으로, 취사와 난방, 가정적 활기라는 에너지를 공급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집의 모양은 근본적으로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지금 짓는 집에서 100년 뒤에 산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으며, 100년 전에 지어진 집에서 지금 산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오히려 100년 전의 예스러운 집이 운치는 더 나을 때도 있고, 사람 사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와 닿는 점도 많다. 그런데 그 모습이 현저하게 바뀌며, 5년 전이 다르고 20년 전에는 아주 딴판이었던 유일한 공간이 있으니, 그것이 곧 부엌이다. 부엌은 문명의 수준을 드러내며 GNP를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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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의 집에는 부엌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가 어려서 먹는 걸 너무 밝힌 탓도 있지만, 먹는 일 이외에 중요한 일이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집의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유일한 시설인 화덕은 그것이 비록 호박돌 몇 개를 빙 둘러 놓은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해도, 그 공간의 주 기능이 부엌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 밖의 시설물로는 깔개가 고작이었다. 인류의 어린 시절 우리는 부엌에서 자라났다. 우리는 화덕을 중심으로 먹고 자고 했다. 

집의 평면은 부엌의 기능이 분화되고 발전된 것이다. 동그란 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은 식구가 늘어나고 대가족이 되면서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게 되자 포도송이처럼 여러 개의 동그라미가 올망졸망 엮어진 집을 만들기도 했지만, 동그라미 자체를 밀가루 반죽처럼 길쭉하게 늘리기도 하였다. 타원형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다가 타원형에도 한계가 오자 사각형 평면이 탄생하였다. 가장 쉬운 기하학에 도달하는 데 꽤 시간이 소요된 셈이다. 

사각형과 더불어 문명은 시작되고 어린 왕자는 사라진다. 기능의 분화와 효율성이 조금씩 평면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심정이 지배하던 역사에 논리의 지배가 자라나고 있었다. 네모꼴로 늘어난 집에는 곡식을 저장하는 구덩이가 파였다. 식품 저장소와 외양간이 가장 먼저 칸을 만들었다. 중국에서는 집을 ‘가(家)’라 하는데 이 글자를 잘 들여다보면 지붕 밑에 사람 대신 돼지가 살고 있다. 울타리로 둘러싸인 마사이족(Maasai)의 집단 주택은 여러 개의 원추형 집들이 큰 동그라미를 그리는데 그 한가운데에 저장소와 외양간으로 된 또 다른 동그라미를 품고 있다. 생존과 관계된 이러한 시설은 중요시되다 못해 신성시되었다. 마사이족들에게 가축은 부(富)일 뿐만 아니라 신비적이고 종교적이며 문화의 기초를 형성하고 경제적 가치를 초월하는 의식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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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거실을 집의 중심 공간으로 인식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이 거실의 개념이 확립된 것은 근세기에 들어서이며 전세기(前世紀)까지의 오랜 기간 동안 동서양을 막론하고 집에는 거실이란 게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의 거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합적 생활 형태가 수용되던 곳은 오히려 부엌이었다. 부엌은 취사뿐만 아니라 작업과 가내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집 안에서 가장 따뜻한 곳이었다.

서양 소설을 읽다 보면 손님이 곧장 부엌으로 드나드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부엌의 큰 난로 위에는 김을 내며 끓고 있는 주전자가 있고, 부엌의 큰 식탁 옆에는 뜨개질을 하는 주부가 있으며, 그 곁에는 장부를 정리하고 편지는 쓰는 가장이 있다. 그것이 가정의 이미지였다. 부엌을 떠나 가정의 이미지는 존재할 수 없었다.

주택과 다른 건축을 구별하는 결정적 공간은 부엌과 침실이다. 초기 인류의 집에는 이 두 가지 기능이 모두 부엌에서 이루어졌다. 상당히 진보된 로마 시대조차 시골 서민들의 집은 기능 분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민초들은 부엌에서 먹고 잤으며 심지어 가축까지 길렀다. 예수가 외양간에서 태어난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대부분의 민초들은 부엌과 외양간이 구별이 되지 않는 공간에서 살았다. 내가 성서를 다시 쓴다면 ‘예수님은 부엌에서 태어나셨다’고 쓸 것이다. 그것이 더 사실적이며 보편성이 있다. 민초들은 주로 부엌에서 살았다. 그러니 부엌에서 태어났어야 옳다.

산타클로스를 보라! 그가 애용하던 주 접근로(main access)인 굴뚝은 부엌의 상징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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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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